단상

mistwoo 2018. 1. 14. 12:14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하면서 더욱 유명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 역시 그 때쯤 이 책에 제목을 들어봤으니까.


아주 담담하게, 화려하지 않은 문체로 현재를 살아가는 82년생 김지영씨의 얘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너무 담담해서, 너무나 그 모습들이 익숙해서 오히려 더 가슴이 아팠다.


나는 어쩌면 김지영씨보다는 좀 더 나은 여건을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할머니와 살면서 장손의 귀중함을 말씀하시기는 했어도

태어나서 돌 때까지 한 집에 사는 할머니가 손녀 얼굴조차 안 보려고 했다는 얘기를 듣긴 했어도

부모님은 딸이라 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없으셨다.

똑똑한 딸이라고,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으라 하셨다.

물론 그렇다고 여자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얘기를 안 하신 건 아니었지만.


그런 가정 환경 속에서 딱히 여자이니까라기 보다는 내 일을 묵묵히 해왔고,

지금의 회사를 20년 가까이 다니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싱글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직장을 가진 여성들처럼 챙겨야 할 아이가 없었고,

가끔 들러야 할 시댁도 없었고,

명절 스트레스도 없었고,

퇴근하기 무섭게 굳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없었으며,

쉬는 주말은 온전히 나의 자유 시간이 되므로.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좋은 상황에서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나 역시 어쩌면 김지영씨에게 100% 공감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고 하면 너무 건방진 얘기가 될 것도 같다.


그러나...


그녀가 살아온 일상들,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지던 외부인들의 말들과 상황은

그 때는 잘 몰랐지만,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얼마나 뿌리 깊게 우리 사회가 남성 위주의 사회로 살아왔던 가를 느낄 수 있었다.


월요일에 회사 한 후배와 맥주 한 잔을 하기로 했다.

37살의 나이에 애가 있으며, 열심히 회사도 다니고 아이도 키우는 후배이다.

그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 친구는 여성 부장님들이 생기기 시작해서 너무 좋아요. 뭔가 우리도 목표가 생길 것 같아요.

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나는 그 친구가 겪는 일의 10분의 1도 안되는 일상의 무게를 갖고 사는데 말이다.


문득...우리 일은 현장을 잘 알아야 하는데, 요즘 친구들은 왜 다들 본사에 있으려고만 할까...

라고 내뱉은 말이 참 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