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제주(1)
유난히 전쟁같은 하루를 사는 요즘.
작년에 비해 짧은 여행을 자주 다니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
웬지 이번에도 쉬지 않으면 버티는게 더 힘들 것 같아서 무작정 제주로 향하기로 했다.
출발 당일 비행기를 탈때까지 아침부터 울려대는 전화와 알림 소리에 꼴랑 하루 휴가에 짜증 지수 훌쩍 올라갔지만
막상 제주에 내려서 주변 풍경들을 보니 까짓거 이번 주말만큼은 진짜루 일 놓아보자라는 생각이 강해지더라는.
계획없이 갑작스럽게 내려온지라
목적지도 일정도 없었다.
평소같으면 언니네서 뒹굴 거렸겠지만
이번만큼은 여행자 모드를 즐기고 싶은 생각에
렌터카에 비치된 네비게이션 검색 리스트에서 무작정 하나 골라서 방향을 잡고
서남쪽으로 돌아 동쪽에 있는 언니네 집으로 가보는 걸로.

일단 배가 고프니 밥부터.
운전하다 눈에 보이는데로 들어간 편의점에 붙어있는 작은 분식점에서 고기국수 한사발.
맛집은 아니지만 딱 적당히 먹을만한 정도.
배고픈 혼여행자에게는 나쁘지 않더라는 ㅎ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금오름.
초입에 있는 생이못 모습.
생이못은 새(생이)나 먹을 정도의 물이라는 뜻이란다.
이름답게 아주 작은 웅덩이.

초입부 숲의 느낌이 참 좋았는데 사진에 잘 안 담아지네.




금오름은 정상에 있는 이 분화구로 유명하단다.
인생샷을 건지느라 분주한 사람들이 꽤 많더라는.
하늘이 맑았다면 분화구에 고인 물에 비치는 느낌이 좋았을 것 같네.



오름에 왔으면 제주 오름에서만 볼 수 있는 이 풍경들을 봐야 하는거쥐!!
우째 사람들은 인생샷만 찍는겐지 ㅎ
오름 정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때 한없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이 참 좋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


금오름의 부드러운 곡선들.
천천히 한바퀴 다 돌아도 30분이면 충분한 듯.

오름을 내려와 신창으로 향하던 중에 눈에 띈 미술관을 잠시 둘러보기로.
오름을 오르며 잔뜩 흘린 땀도 식힐겸.

김창열 미술관.
검은 노출콘크리트인걸 보면 여기도 골재를 현무암으로 쓴건가?
암튼 전형적인 미술관 매스.

로비 느낌이 좋아서 한컷.

중정에 있는 분수와 유리면에 새겨진 작가의 이름이 한폭의 작품 같다.

전시관 내부.
오름을 오르느라 잔뜩 흘린 땀을 바로 식혀주니 좋구나~
여기까지 들어설때도 몰랐다.
작가는 몰라도 작품은 익숙한 것이었다는 걸!!


들어가보니 유명한 물방울 작품 작가의 미술관이었다는!!

초기 작품을 보면 물방울 표현이 입체감보다는 흐름을 부드럽게 표현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입체감이 더해지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눈길을 끌었던 작품.
회폭을 가득 채운 한자들 속에 있는 물방울 하나.
웬지…정신없이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외로이 고립된 것 같은 지금의 내 심리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에서 웬지 작가에게 물방울의 의미는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유년시절에 대동강가에서 놀았다고 하는데
그 시절 강모래밭에서 놀다 각인된 물방울은 그에게 환상. 동경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전시실 중간에 설치된 물방울 조형물.
공간의 느낌과 잘 어울린다.
반대로 비쳐지는 창의 모습도.

분수대에 있던 조형물도 물방울.
올해 초에 별세하셨다는데 참 멋진 작품을 남기셨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좋은 느낌 받고 갑니다~
하늘에서 편안하시길.